"언제까지 '원자력 제국'의 신민으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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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민>"언제까지 '원자력 제국'의 신민으로 살 것인가"

이현민 0 8,627 2007.11.15 11:56
[프레시안  2007년11월15일]
 
 
[기고]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착공에 부쳐

[프레시안 이현민/부안시민발전소 소장]

11월 9일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서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인 '월성 원자력 환경 관리센터' 착공식이 있었다. 지난 2005년 11월 주민투표를 통하여 방폐장 유치가 경주로 확정된 것에 따라 2년 만에 본격적으로 공사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일대 60만 평(210만 m²)의 부지에 80만 개의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드럼을 처분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참석해 축사를 한 이 날 행사에서 경주는 기존의 '관광 도시'뿐만 아니라 '첨단 과학 도시'로서의 장밋빛 미래로 넘쳐났다. 앞으로 양성자 가속기 연구 센터와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 이전으로 동해안 에너지 클러스터의 대표 지역이 될 거란다. 이런 탓에 방폐장을 반대했던 부안, 군산은 '굴러 들어온 호박을 걷어찼다'는 구설수에 올라야 했다.

돈으로 산 중ㆍ저준위 방폐장

노무현 정부는 방폐장 부지 확정을 두고, 지난 19년간 표류하던 국책사업을 해결한 이 정부 최대의 치적으로 자랑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한 지역 정책 연구소의 자료를 인용하여 2020년이 되면 경주 인구가 2배 이상 늘고, 주민 소득이 2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방폐장 유치 효과를 앞 다퉈 실었다. 지역 발전 지원금과 55개 지역 지원 사업은 그 근거다.

그러나 정작 지역 주민은 정부가 약속한 각종 지원 사업에 '아직 피부로 느낄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실 예전에도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마다 수조 원이 투자되었고, 시로 승격될 것이라는 등 지역의 획기적인 발전이 약속되었었다. 그러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금은 쓰임새를 제대로 찾지 못한 채 지방자치단체의 금고에 쌓여있다. 경주가 얼마나 발전할지도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이런 경주를 보면서 다시 떠올리기 싫지만 2003년 부안이 생각났다. 정부는 낚시꾼으로 위장해 주민을 매수하던 초기 사업 방식이 통하지 않자, 나중에는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주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심지어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현지 주민에게 가구당 현금 보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무책임한 발언조차 내뱉었다.

정부가 부안에서 진행된 절대 다수의 주민이 참여한 주민투표의 결과는 무시해 놓고서 정작 경주 방폐장은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된 것이라며 추켜세우는 것을 보면 쓴웃음만 나온다. 하긴, 정부는 그 이전에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했다. 정부는 군의회의 부결조차 무시한 부안 군수의 독단적인 결정만을 근거로 유치 확정을 발표해, 지역 주민의 엄청난 저항을 불러왔다.

이런 행태는 사실 실제로 경주, 군산 등에서 진행되었던 2005년 11월의 주민투표에서도 그대로 반복되었다. 대부분의 공무원이 경쟁적으로 동원된 희대의 관권 선거로, 원색적인 지역감정까지 조장해, 이른바 이승만 정권 때의 '막걸리 투표'를 떠올리게끔 하는 그런 주민투표가 아니었던가? 이 정부는 민주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

이 과정에서 방폐장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안정성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정부는 방폐장이 건설될 위도의 지질 안전성 조사를 졸속으로 진행하는 등 과거 안면도, 굴업도에서 했던 행태를 그대로 반복했다. 또 이런 방폐장 추진 과정에서 지역 주민을 찬ㆍ반 양측으로 갈라놓아 지역 공동체를 한순간에 파괴했다. 물론 이런 지역의 상처에 대통령부터 지방자치단체장까지 그 누구도 사과 한 마디 없었다.

고준위 방폐장도 돈 주고 사?

경주 중ㆍ저준위 방폐장의 착공은 시작일 뿐이다.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과는 비교가 안 될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의 문제가 남아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8000톤(t) 정도의 사용 후 핵연료라 불리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20개의 원자력 발전소 부지 탱크 속에 임시로 저장되어 있다. 2016년에는 이 또한 가득 찬다. 그런데 이 사용 후 핵연료는 중ㆍ저준위 방사성 폐기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방사성과 발열량을 가진 위험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장과 관련해서는 마땅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숙제로 남아있다. 그나마 핀란드, 스웨덴, 독일 정도가 가장 모범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고 있는 나라로 꼽히고 있다. 이 중 독일의 예를 보자. 독일은 지난 1998년 원자력 에너지를 포기하기로 하면서 방폐장 추진을 원점부터 다시 논의했다.

1999년 '독일 방사성 폐기물 영구 처분장 부지 선정을 위한 위원회(아켄트)'를 설립하고 다음의 사항을 결정하였다. △기존에 추진하던 고어레벤 방폐장에 대한 부지 적합성 조사를 중단한다. △2005년부터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를 금지하고, 방사성 폐기물을 발전소 부지에 임시로 보관한다. △방폐장 건설을 장기간에 걸쳐 검토해 추진한다. 독일은 이렇게 정부 입장부터 정해놓고 방폐장 논의를 시작했다.

한국은 어떠한가? 정부는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변함이 없다. TV와 언론에서는 고유가 시대와 지구 온난화 대안으로 오히려 이를 확대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띄우기에 여념이 없다. 결국 방폐장 추진은 원자력 발전 확대를 위한 기반 조성에 불과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폐장 추진 논의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정부는 2006년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에너지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여기에서 사용 후 핵연료의 처분과 관련해 △2007년 공론화 세부 추진 방안 마련하고 △2008년 이해관계자를 포함한 각계 의견을 수렴해 공론화를 추진하는 일정을 확정했다. 그러나 선뜻 신뢰가 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해온 모습을 보면 명분 쌓기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불신을 드러내면 정부 정책에 대한 발목잡기라고 일축해 버리곤 한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이나 방폐장과 관련해 언제 정부와 관련기관이 단 한번이라도 솔직한 적이 있었는가? 나는 지금 당장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 중단을 요구하거나 방폐장 추진을 무조건 반대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음 세대에 무책임하게 전가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원자력 에너지, 미래 에너지인가?

단지 방폐장이라는 단일 사안으로 떨어뜨려 놓고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정책의 차원에서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한 개발이라는 관점에서 총체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에너지 전환의 문제로 귀결되어야 하며, 그 방식에 있어서 투명성과 공개성이 전제가 되어 사회적 합의로 결론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용 후 핵연료 처분장에 대한 공론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환경을 우선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한 내용은 정부가 먼저 나서서 원자력 발전에 대한 중ㆍ장기적인 계획, 사용 후 핵연료의 재처리 여부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 해당 지역 주민을 포함하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 합의의 원칙을 지켜나가겠다는 신뢰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언제까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을 강요하며 지역을 희생양으로 삼으려하는가? 그러한 방식으로는 불가능함을 이미 다른 나라의 사례로부터 충분히 배울 수 있지 않는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원자력 제국이여….

이현민/부안시민발전소 소장 (tyio@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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