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과학이 어렵다, 건조하고 지루하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사실은, 지질과학은 매우 논리적이고 재미있는 학문입니다. 어렵고 지루한 것은 원리와 유래를 모르고 나열된 지식을 기계적으로 외우기 급급하기 떄문입니다. 지질 현상과 원리를 설명하면서 이에 얽힌 여러가지 재미있는 일화를 같이 소개한다면, 이러한 잘못된 인식이 한 순간에 날아갈 것입니다. 이에 여기에 지질과학 관련 일화를 모읍니다.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발견에서부터 한국의 지질학 발전 과정에서의 작은 일들까지 관련된 여러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들,그리고 현재 지질과학을 공부하면서 일어나는 즐겁고 다양한 뒷얘기들을 공유해 주세요.
화석 오류의 역사 (1) - 베링거 편
과학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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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10 10:46
베링거(Johan Bartholomew Adam Beringer, 1667-1740)는 18세기 독일 위르츠부르그의 의
과대학 학장인 동시에 줄리안병원의 의사였고, 이 도시 주교의 주치의였다. 한마디로 위르
츠부르그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학자였던 셈이다. 그런 그가 도시 근처 산(Mount Eivlstadt)
에서 놀라운 화석들을 발견해 "위르츠브르그의 석판화석"이라는 책으로 발표했다.
이 책에는 그가 채집한 아주 특별한 "화석"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다. 화석은 납작한 돌
표면에서 입체적으로 도드라져 여러 종류의 형상들로 나타나있다. 이 화석들은 일반적인
화석에서는 보존될 수 없는 여러 가지 동물의 겉모양이 완전하게 표현돼 있다. 즉 비늘을
가진 도마뱀과 눈동자가 분명한 새,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 꽃의 꿀을 빠는 벌, 교미하는
개구리가 있는가 하면 심지어 긴 꼬리를 끄는 혜성, 달빛을 비추는 초승달, 사람 얼굴 형
상을 한 태양뿐만 아니라 히브리 글자도 있었다.
베링거는 자신이 발견한 화석과 진짜 화석의 차이점을 인식했으나 그의 화석이 자연 현상
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확신했다. 그는 화석이 생물 기원에 의하서만 만들어진다는 주장
을 열성적으로 반대한 사람이었다. 즉 생명체를 비롯한 모든 사물이 화석이 돌 수 있다고
믿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1726년 그의 책이 발간된 지 얼마되지 않아 그는 자신의 화석 발굴
현장에서 자기 이름이 새겨진 화석을 발견하고 만다. 충격에 빠진 베링거는 자기가 책에
서 기술한 모든 화석이 누군가 조각을 해서 땅속에 묻어놓은 것이 확실해지자 깊은 절망
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전 재산을 털어 이미 팔려나간 책을 회수하여 안간힘을 다하지만 쓰라린 굴
욕감으로 몇년을 고민하다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베링거는 슬픔에 싸여 죽은 것이 아니
라 사기 사건 후 14년 간 더 살았으며 교수직도 유지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후 베링거는
멍청이의 상징이 됐고, 학계의 조롱거리로 회자됐다.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다른 책들도
호사가들의 수집품으로 비싸게 거래됐으며 그가 수집한 "화석"은 현재에도 존재하며 매우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 비극의 발단은 같은 대학의 시기심 많은 동료 두명에 의해서 였다. 그들을 지리학과
교수였던 로데릭(J. Ignatz Roderick)과 도서관원인 에크하르트(Georg von Eckhart)였다.
특히 로데릭은 자기가 직접 "화석"을 조각해 17살의 잔거(Christian Zanger)를 시켜 베링
거의 화석 발굴지에 파묻도록 했다. 잔거는 베링거를 위해 일을 했던 청년으로 이중스파
이 역할을 한 셈이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지고 그들은 법정에 서게 됐으며 응분의 처
벌을 받았다.
결과가 어찌됐던 베링거는 악의에 찬 동료들의 모함으로 인한 희생자였다. 물론 그가 화
석의 판별을 잘못한 점은 인정되나 베링거가 살던 시대인 18세기에 화석의 정의는 완전하
게 정립되지 않았었다. 오히려 베링거의 "거짓화석"은 화석기원의 불확실성이나 무기물
기원 같이 오랫동안 잘못 전해 내려온 낡은 생각을 타파하는데 기여한 바가 크다.